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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불합격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by 루이지애나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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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무원 시험에서 2년 연속 떨어졌다.

결혼식 두 달 앞두고 파혼 같은 이혼을 당하고 합의이혼 도장 찍기도 전에 공단기 프리패스 결제를 하고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창피한 내 진짜 과거를 드러내는 이유는, 이렇게 글로라도 써보면, 입 밖으로 내뱉는 건 물론 더 어렵지만, 글로라도, 내 공간인 블로그에 끄적거리기라도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내가 나를 더 잘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물론 쉽지 않지만, 어쨌든 난 장기 연애 후 이혼 딱지를 갖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해서 6개월 만에 첫 시험을 보고 물론 떨어지고 재시를 준비했고, 교육행정직 공무원 9급 재시 결과도 몇 문제를 더 못 맞혀서 떨어졌다. 그래 그게 현재의 나다.

 

그리고 난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을 아끼는 건지 그냥 무슨 말을 해야하는 지 모르겠는 건지, 니 인생 네가 알아서 살라는 건지 별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난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난 지금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창피하고 쪽팔린다. 이런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뭘까. 그런 말을 누군가가 해주면 좋겠다. 그런 말이 공무원 시험 불합격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위로 아닐까?

 

난 친구가 별로 없다.

그 중에는 공무원 시험 4년 준비하다가 그만두고 잠깐 1년 정도 사무직 일을 하다가 결혼한 친구가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미 겪은 친구라 그런지 그냥 아- 말만 해도 어-하는 친구다. 그냥 '아 그랬구나 맞아 그럴 수 있어' 이런 식의 느릿한 대답이 위로가 된다. 그냥 너무 빨리 답을 받아치듯이 하는 위로 말고. 그냥 나를 공감해주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이해한다고 반응해주는 것. 그냥 해결책을 내놓는 식의 위로 말고.

 

'요즘 실패자라는 감정이 널 억압할 수도 있는데, 시험 한번 떨어졌다고 세상에서 실패자는 아니야.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다 실패 자게? 그리고 합격자들보다 불합격자가 훨씬 더 많아. 그냥 네가 실패한 게 아니라 너의 노력이 부족했던 거라 생각하자. 물론 열심히 했겠지만 이보다 더한 노력을 네가 할 수 있으면 재도전하는 거고 네가 판단하기에 더 노력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재도전하지 않아도 돼. 각자의 길이 있는 거 같아.'

내 가까운 친척은 이런 말을 해줬다.

 

공무원 하기에는 너의 그릇이 너무 크긴 해^^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리인가 했는데 괜히 믿고 싶어지는 말이고 그냥 허무맹랑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 그릇이 월급 150 받는 공무원을 하기에는 좀 크지. 그전에 혼자 사업으로 월 400도 벌었던 경험이 있는데, 암 내 그릇이 좀 공무원 하기에는 좀 크다 맞아, 이 딴 거에 상처받지 말자 내가 불합격한 건 다 하나님 뜻이 있는 걸 거야. 다 아시는 분이니까.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심지어 걱정은 죄라고 까지 했잖아? 너무 종교적인 이야기의 위로가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내게는 통했다.

 

이제 곧 공무원 지방직시험 본 날로부터 한 달이 되어간다. 

난 여전히 어떤 다른 일도 하지 않고 있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 했다. 아니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억지로 그냥 발 닿는 대로, 원서를 넣거나 그러진 않을 거다. 경제 위기가 성큼 다가왔고 큰 회사들은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때는 오히려 입사를 노리기보다는 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냥 뭐 잠깐 스치는 생각일지라도 그렇다.

 

나는 남이 나를 위로해주기 보다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동안 안 했던 인스타그램에서는

온갖 동기부여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그냥 당장 와닿지 않고 어려운 동기부여도 다 저장하고 캡처하고 그런 것들로 나를 감쌌다. 불합격이라는 절망과 거리가 먼 것들로 나를 감쌌다. 물론 내가 보고 캡처한 내용들을 내가 다 실행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몸은 게을러서 하루 종일 이불 바닥에 붙어있기도 하지만 우선은 생각부터 좀 살아나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오늘은 카페에서 이렇게나마 글을 쓰고 있고 내 생각을 기록하고 뭔가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있다. 잘했다 나 자신.

 

공무원 불합격한 친구, 가족, 그 누군가에게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괜찮아,

그동안 수고했어, 다른 길이 있을 거야, 이거 시험 한번 떨어졌다고 세상이 망하진 않잖아,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따로 있을 거야, 넌 존재 자체로 충분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해봐, 괜찮아'

 

힘내 라는 말보다 괜찮아 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더라.

힘내 라는 말은 왠지, 힘을 내야만 하는 것 같은 의무적인 느낌이라 부담을 느꼈다. 

그렇다고 '괜찮아' 뒤에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은 너무 나몰라라식으로 떠넘기는 느낌이 드니, 다 잘될거야 라는 가벼운 뉘앙스는 하지 말자. 나도 떨어져 봤으니 할 수 있는 위로의 조언이지만, 무엇보다 가볍게 생각하는 위로는 가장 최악이다. 그동안의 내 노력과 모든 것을 그냥 몇 초만에 입 밖으로 뱉는 가벼운 단어들로 위로 랍 시도 퉁치는 느낌, 그건 위로는커녕 더 기분이 나쁘다.

 

이제 나는 조금 나아졌다. 적어도 나 자신을 실패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경험에는 배울 점이 있다고 하더라. 나는 공무원 시험 2번 불합격을 하면서, 아 나는 언어능력이 정말 부족하구나. 공부를 한다고 해서 언어능력은 쉽게 늘지 않는구나. 문해력이라는 건 시간 투자 대비 향상되기가 쉽지 않구나. 그러니 이번으로써 공무원 도전은 끝이다.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공시생 신분을 스스로 관둘 수 있었다.

 

혹시..

나처럼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분이 이 글을 읽는 다면..

 

괜찮아, 세상에 길은 많고,

단지 내 길이 아니었던 거야

정말 공무원이 하고 싶다면

다음에 더 노력을 더하면 돼

그리고 괜찮아

당신의 노력은 대단해 칭찬해

1년 넘게 꾸준히 공부 한 것만으로도

당신의 끈기와 인내는 대단해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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